주영위의 우리 음악이야기.....

주영위 약력
-서울대 국악과, 한양대 국악과 대학원, -국립국악원, KBS 국악 관현악단 부수석 -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이수자, -대구광역시 문화재 전문위원 -한국전통음악학회 이사, -경북국악관현악단장 및 상임지휘자 -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및 상임지휘자, -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
대금이야기
2017-04-20 14:25:35 | artkorea | 조회 2776 | 덧글 0

⑥ 대금이야기

<전설傳說 및 일화逸話>(장사훈저,『한국전통음악의 이해』(서울: 서울대출판부, 1985), 53-56쪽 일부인용)

신라통일의 대업大業을 이룩한 문무왕文武王이 동해東海 감은사感恩寺를 창건하다가 채 끝나기 전 돌아가고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한 다음 해의 일이다.

동해 가운데에 작은 산이 있는데 감은사를 향하여 파도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관日官에게 점쳐보니, 반드시 큰 보배를 얻으리라는 것이다.

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이견대利見臺에 나아가 사람을 보내어 그 산을 살피게 하였더니 “산의 모양은 자라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 대(죽)가 있는데, 낮에는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 되면 합하여 하나가 된다” 고 하였다.

임금이 직접 그 산에 들어갔더니, 용이 검은 구슬 띠(흑옥대黑玉帶)를 바치었다.

임금이 용에게

“이 산의 대(죽)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하기도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?”

하매, 용이

“한번 손뼉을 치면 소리가 없고, 두 번 치면 소리가 나며, 이 대는 합한 연후에 소리가 있는 것은 임금이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상서로움이다.”

라고 대답하였다.

임금은 곧 사람을 시켜 그 대를 메어오게 하여 젓대(적)을 만들었고 고구려의 거문고와 함께 월성月城 천존고天尊庫에 신기神器로 소중히 간직케 하였다. 과연 이 젓대의 신통력이 있었다. 이 젓대를 불면

“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오고, 장마 때는 하늘이 맑아지고, 바람이 자자들고, 파도가 잠잠해 지므로 이를 ‘만파식적萬波息笛’이라하고 국보로 삼았다.” 라는 이야기가 전한다.

그 뒤 효소왕 2년(693)에는 다시 이 젓대를 ‘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’이라고 고쳐 명명하였다.

조선말기 헌종ㆍ고종시절에 이름을 떨친 젓대의 명인으로는 정약대鄭若大ㆍ최학봉崔鶴鳳 등을 손꼽을 수 있다.

정약대는 매일 서울 인왕산仁王山중턱에 올라가서 젓대 불기를 10년을 하루같이 계속하였다. 7-8분 소요되는 ‘도들이’라는 곡조를 부는데, 한번 끝나면 나막신에 모래 한 알을 넣는 것을 하루 종일 반복하여 모래알이 나막신에 가득 차야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한다.

그런데 10년이 되던 어느 날 그 나막신에 쌓인 모래 속에서 이상한 풀이 싹터 솟아나왔다는 것이다. 그는 이렇게 노력해서 대성한 명인名人이다.

최학봉은 김계선金桂善(1891-1943)명인의 스승이다.

김계선의 본명은 김기선金基善이었으나 1916년 계선桂善으로 작명하였다. 그는 젓대의 명인일 뿐만 아니라 당적唐笛, 단소短簫, 생황笙簧은 물론 시조時調에도 능통했다.

또한, 양악기인 풀룻, 클라리넷, 오보에, 섹스폰 등 관악기를 마음대로 다루는 그 신기神技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.

그는 양악기를 다루어 본 기법과 능력을 젓대에 도입하고 활용함으로써 신민요, 유행가, 일본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독보적인 존재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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